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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성폭력 피해를 말하지 못한 이유

상담사M 2023. 7. 23. 10:10

1. 내가 겪었던 성폭력 피해

나는 아주 어린 5세 무렵부터 성폭력 피해에 노출되어 있었다. 어쩌면 나의 기억에 없는 보다 어린 나이부터 피해에 노출 되어 있을 수도 있다. 땀이 뻘뻘 나는 땀냄새, 더럽다고 느낀 손의 느낌들이 지금도 생생하다.

 

나는 나의 성폭력 피해를 바로 말할 수 없었다.

본능적으로 이것은 잘못된 행동이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첫 번째 성폭력 가해자는 무서운 어른이었다.

조폭 출신이었고, 나의 부모가 가해자를 이길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성인이 되기까지 많은 피해에 노출 되었다.

2020년대에는 드문 일이지만 내가 어릴 때에는 흔했던 일이 있다.

길을 걸어 가고 있는데 낯선 남자가 갑자기 팔을 잡고서 가슴을 주물렀다. 그리고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요즘 같으면 바로 가해자를 고소하고, 형사소송 절차를 거쳤을 것이다. 길가의 방범용 CCTV를 확인하여 증거를 확보하고.

하지만 그때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어차피 가해자는 얼굴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서 잡을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있었던 수많은 피해를 말하기까지 2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2017년 연말 미투의 바람이 불었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도 처음으로 말을 했다.

 

2. 성폭력 피해 이후 내가 느낀 것들

성희롱, 성추행, 성폭력

강간 피해까지 겪으면서 느꼈던 것

 

세상에 나는 혼자다.

나는 이미 더럽혀졌다.

나는 걸레다.

모든 것은 내 잘못이다.

평생 나를 따라 다닌 말들이다.

 

나는 자살 시도를 했다.

나는 살아 있지만 빈 껍데기였다.

나는 살아도 죽은 사람이었다.

나는 세상 속에 어우러질 수 없는 쓰레기로 느껴졌다.

이 모든 것은 가해자들이 나에게 가해 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인 데도 말이다.

나는 나를 탓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세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책을 읽어도, 상담을 해도.

상담사들도 책도 이 모든 것은 내가 부른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원해서 발생한 일이라고 했다.

내가 자초한 일이라고 했다.

나의 의식이 부른 것이라고 했다.

 

지금은 그 모든 말들에 대해 부정할 수 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상담사들도 힘들어서 포기하는 내담자였다.

 

내가 이야기를 해도 아무도 믿어 주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
결백한 상태여야 한다는 강박
그로 인해 나는 나의 피해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3. 성폭력 피해자에게 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들

지금 현재 당신이 주변인의 성폭력 피해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면,

혹은 들을 예정이라면 꼭 기억해주기를 바라며 하는 말

 

나의 성폭력 피해에 대해 말할 때

나는 아주 약한 크리스탈잔 같은 사람이 되었다.

언제 부서질지 모르는 상태였다.

 

나는 나의 피해에 대해 글로 쓴 적은 많았다.

일기, 편지, 메일, 톡 등을 통해

주변인에게 털어 놓았던 경험들은 많았다.

2017년 피해를 공론화 하기 전까지 말이다.

 

그 이유?

상대의 반응이 두려워서였다.

상대의 반응이 어떨 것 같았냐고?

0.1초의 찰나의 눈빛일지라도 평생 각인될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것이 부정이든 긍정이든 동정이든 말이다.

 

나를 버리고 싶은 눈빛일까 봐서.

나를 외면하고 싶을까 봐서.

나를 걸레처럼 볼까 봐서.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눈빛일까 봐서.

나를 동정할까 봐서.

나를 부담스러워 할까 봐서.

다양했다.

 

셀 수 없이 많은 경우의 수,

다양한 형태의 불안이 나를 삼켰다.

 

그래서 얼굴을 보고 이야기 할 수 없었다.

눈을 보고 말할 수 없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테이블을 보고서 말했다.

 

그러니 누군가 당신에게 피해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 솔직하게 대답하라.

어떻게 반응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현재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떤 말이나 행동도 조심스럽다. 네가 상처 받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솔직하게 말하라.

단, 상대가 나처럼 아주 약한 상태일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말이다.

 

또는 지금 성폭력 피해자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지 물어 보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내가 위로를 해주는 것을 원하니. 

내가 함께 방법을 찾아주기를 원하니.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까?

너에게 집중하고 너를 돕고 싶다고 말이다.

 

성폭력 피해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바로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 0.1초로 인해 평생 원수가 되거나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있다.

따라서 미리 예방주사 맞는다고 생각하고

내 글을 명심했으면 한다.

 

이것은 내가 경험한 것이고,

나의 이야기이다.

 

성폭력 피해 상담을 전문적으로 하면서

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내담자들을 통해서 들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원했던 것, 나의 언어.

나의 이야기이므로 다른 내담자들까지 모두

이렇게 해주기를 바란다고는

생각하지 말아주었으면 한다.

참고만 해주기를.

 

4. 단 한 명도 고소하지 못한 이유

나는 수많은 피해를 경험했다.

가해자들을 전체 10명이라고 한다면

그 중 면식범이 8명이었다.

 

단 한 명도 고소하지 못했던 이유는 다양하다.

가해자가 현재 가정이 있어서.

어린 자녀들이 있어서.

공소시효가 지나서,

증거가 충분하지 못해서.

혈연 관계라서. 친척이어서.

가해자가 나보다 권력이 있는 사람이라서.

가해자의 연락처나 사는 곳을 알지 못해서.

가해자의 삶을 내가 망친다는 두려움이 커서.

특히 친족에 의한 피해는

내가 가족 전체를 망친다는 두려움이 커서

고소하지 못했다.

피해의 정도는 심각했으며, 반복됐다.

하지만 단 한 건도 신고 하지 못한 나는 비겁했다.

 

나의 주된 정서는 불안, 우울, 죄책감이었다.

 

나로 인해 다른 피해자들이

더 생겼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상당수의 가해자들은 가해를 1회로 멈추지 않는다.

자신의 범행이 발각되지 않는다면,

또다른 피해자에게 가해를 한다.

그것이 성폭력 가해자다.

그런데 나는 비겁하게도 아무도 고소하지 못했다.

내가 대응하지 못해서 이후 피해자가 된

피해자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모든 피해를 주변에 말 못한 것은 아니다.
도움을 요청했지만 도움 받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직접 대응한 사례도 있다.
그 결과 가해자가 직장에서 해고 되거나
퇴거 요청을 받았다.

 

5. 다시 피해가 있어도 고민할 수밖에 없는 고소

만약 지금의 내게 누군가가 가해한다면?

내가 성폭력 피해를 전문적으로 상담을 하고 있는 데도 고소까지는 수많은 고민이 뒤따를 것이다.

성폭력 피해 상담을 하고 고소를 하고, 사건이 종결되기까지의 과정

성폭력 피해자들

내가 상담하는 내담자들이 경험하고 견뎌내는 시간들을 보았을 때

나는 선뜻 그 선택을 할 자신이 없다.

 

경찰 신고 하면 알아서 경찰이 다 해줄 거라고 생각하고 무작정 신고를 하고 오는 내담자들

절대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2심까지 혼자 진행하다가 사건이 엉망진창이 된 후 상담소를 방문하는 내담자들

 

나는...

과연 나는 또다시 피해를 겪게 된다면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가.

매일 생각한다.

나는 선뜻 고소할 수 없을 것이다.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경찰 신고 해놓고 잊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건이 끝날 때까지 그 고통은 이어지기 때문이다.

10명 중 9명의 가해자는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고

피해자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의 반박과 

치열한 공격을 하니까 말이다.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서.

나를 다치게 할 것이니까.

명백한 증거가 있으면 모를까.

 

아니, 명백한 증거가 있어도

나는 선뜻 고소할 수 없다.

그 시간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너덜너덜 해지는 상태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

단단히 마음 먹었는 데도

피해가 있었을 때보다

때로는 더 망가지는 나의 삶을

바라볼 자신이 없다.

 

그래서 더 나는 어려운 사건일수록

내담자들이 겪어야 할 고통이 빤히 보여서

방어적으로 상담을 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담자가 모든 것을 감당해보겠다고 할 때

나는 적극적으로 상담하고 조력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나의 사건을 대하듯 온 힘을 모은다.

 

단 한 번도 고소하지 못한 나와 달리

용기 내어 대응하는

성폭력 피해자들을 끝까지 조력한다.

 

만약 내가 피해를 계속 경험하고 있을 때

지금의 나와 같은 상담사, 상담소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면

나는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고소라는 방법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상담도 받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지금과는 또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지금까지보다 덜 아프고,

더 행복하고 기쁜 삶을 살지 않았을까?

 

가해자들은 모를 고통을

평생 겪고 있는 나를

스스로 다치게 하지 않고

사랑하면서 말이다.